2009년 11월 28일
비담비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처음 본 건 어린이를 위한 만화로 각색한 거였다.
월간지에서 연재를 했던 것 같은데, 마지막 화에서 라임오렌지 나무를 자를 때 너무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 때 나는 너무 어렸고,
나는 주인공과 라임오렌지나무가 정말로 대화를 나누는 거라고
라임오렌지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살아있는 나무라고
(저기, 나무는 원래 다 살아있습니다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그 나무는 말하는 나무니까 베면 안 된다고
지금까지는 비밀을 지켜왔지만
라임오렌지나무를 살리기 위해 그 말을 할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주인공은 그 말을 하지 않고 끝내 나무를 죽였다.
나중에 좀 더 커서 원작을 읽어서야
내가 단단히 오해했음을 알았고, 처음 본 만화에서는 없던 구절을 봤다.
어린왕자였는지, 어린 예수였는지가 성당인지 어딘지를 울면서 두드리며 하는 말이
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
였든가,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 하나요?
였든가 그랬다.
저 문구를 기억하는 게 저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다. ㅡㅡ;;
라임오렌지나무가 진짜로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만큼은 컸지만,
저 말을 이해할 정도로는 자라지 않았던가 보다.
... 아니면 그냥 내가 바보였든가. ......
교과서에 있던 소설 중에.. 음.. 그 때가 아마 중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닌가? 음...
암튼 나비를 수집하는 소년이 있었다.
하루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너무나도 갖고 싶던 나비 표본을 보고 저도 모르게 훔친다.
훔치려고 훔친 게 아니라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집어버렸고,
무슨 짓을 한 건지 나중에 깨닫고 감췄고
그 과정에서 흠없이 아름답던 표본은 망가진다.
주인공은 친구를 찾아간다.
친구는 왜 망가졌는지 모르는 그 표본을 어떻게든 수선해보려고 아둥바둥하던 참이었고
주인공은 고백한다.
친구는 그저 비웃으며 "그래, 뭐, 넌 그런 놈이지." 이런 태도를 취하고
주인공은 집에 와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나비 표본을 모두 바스라뜨린다.
선생님께서는 "이 소설의 주제가 뭘까?" 하셨고
선생님이 지목한 아이들, 지목을 당하진 않았던 나는 같은 대답, 같은 생각을 했다.
"친구의 물건을 훔치는 건 나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몇 명 더 물어봤고, 다들 당황해서 더듬거리면서,
딱히 다른 대답은 생각이 안나 같은 말을 반복하자
성장소설이라고 하셨다.
모아둔 나비 표본을 부수는 건, 유년 시절이 끝났음을 말하는 거라고.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 나 바보 맞다. ㅡㅡ;;;
그래서 그 소설을 기억한다. 제목은 잊었지만...
이해하지 못해서, 뭔 소린지.
한 때 성장소설에 집착했던 건... 그냥 내가 바보였던 게 한심해서? ...
미실이 사라지면 선덕여왕 뭘로 끌고 가냐
미실이 사라지면 시청률 확 떨어질 걸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꼭 보리라 다짐했다.
왜냐!
나에겐 비담이 있으니까!
미실이 사라지면 잠시 시청률이 떨어지긴 하겠지만
워낙 잘 만든 드라마고, 50화가 넘게 하다보면 시청률이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있는 거지.
하지만, 바로 그 비담 때문에 도저히 선덕여왕을 볼 수가 없다.
비담이, 어른이 되어버렸다.
비담이, 철이 들어 버렸다.
아이들은 살아있는 잠자리 날개를 뜯는다.
천진난만하게 눈을 빛내며 발버둥치는 모습을 바라보고,
날개가 뜯기는 순간, 손에 오는 촉감, 시원함을 만끽한다.
비담은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모르고
그래서 쉽게 읽히고, 그래서 읽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이제 비담은 자기가 무얼 하고, 무얼 하지 않는지 안다.
자기가 하는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지 않는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안다.
비담, 다 커버렸다.
왜, 도대체 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
왜?!
흑흑
# by | 2009/11/28 04:57 | 네 멋대로 써라 | 트랙백 | 덧글(1)











